산유국들이 미국의 압박에도 원유 생산 대폭 축소에 나선 가운데 미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일부 풀어 석유를 생산·수출할 수 있도록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일 조 바이든 행정부가 그간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에 가했던 제재를 완화해 미국 정유사 셰브런의 현지 석유 생산을 허용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상당한 제재 완화 시 그 대가로 2024년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 야당과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고 소식통이 WSJ에 전했다.

미국, 베네수엘라 정부와 야권은 미 은행에 동결된 수억달러 규모의 베네수엘라 자금을 풀어 식량·의약품 수입과 낡은 전력·상수도 시설 개선에 필요한 장비 확보 등에 활용하는 협상도 진행 중이다.

이 협상이 성사되고 셰브런이 생산을 재개하면, 베네수엘라는 단기적으로 제한된 물량의 원유를 세계 시장에 수출할 수 있게 된다.

베네수엘라는 1990년대 하루 320만 배럴 이상을 생산했던 주요 산유국이었으나, 투자 부족과 부패, 관리부실 등으로 지난 10년간 관련 산업이 붕괴했다.

특히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행정부의 제재로 서방 기업들이 철수하면서 원유 생산은 더욱 위축됐다.

하지만 셰브런이 생산을 주도하고 미국 정부가 수출을 승인하면 베네수엘라는 수개월 내 수출 물량을 현재 하루 45만 배럴의 두 배 수준으로 늘리고 2000년대 초반 누렸던 석유 시장 영향력을 향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 관계 회복 전망은 유가 하락 저지를 위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의 감산 결정과 그에 대한 미 행정부의 반발이 나오면서 힘을 얻고 있다.

앞서 이날 OPEC+는 월례 장관급 회의 후 낸 성명에서 다음 달 원유 생산량을 이달보다 하루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최대 감산 폭이다.

이에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대통령은 세계 경제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초래한 부정적인 영향에 대응하는 가운데 나온 OPEC+의 근시안적인 감산 결정에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석유 매장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베네수엘라가 본격 생산에 들어가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원자재 시장이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유럽의 에너지원 확보와 국제 유가 안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 정부와 미국 등이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가 이끄는 야권 등 양측 내부의 반대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제재 완화에 반대하는 야권 인사들은 이번 합의가 마두로 정부에 별다른 양보 없이 정권 유지의 길을 터주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으며, 정부 내부에서는 마두로 대통령이 신자유주의로 선회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이후 물밑으로 진행돼 온 협상은 지난 1일 베네수엘라가 미국인 7명을 석방하고, 미국이 마약 밀매 혐의로 수감 중이던 마두로 대통령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의 조카 등 2명을 풀어주면서 수면으로 떠 올랐다.

한편 WSJ의 이 보도에 대해 미 국가안보회의(NSC) 에이드리엔 왓슨 대변인은 보도자료를 내고 마두로 정권이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건설적인 조치"를 행하지 않는 이상 제재를 완화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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