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신형 핵탄두 탑재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취소하고 일부 전략핵무기를 퇴역시키는 조처를 취했다.

하지만, 파괴력이 제한적인 전술핵무기는 기존 입장을 뒤엎고 계속 운용하기로 한 까닭에 반핵단체 등은 불충분한 조처라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27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이날 공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시작된 잠수함 발사 핵탄두 순항미사일 개발 프로그램 취소를 확인했다.

미 국방부는 이에 더해 B-2 등 전략폭격기에서 투하되는 핵항공폭탄인 B83-1도 퇴역시키기로 했다.

B83-1은 2차 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핵탄두의 80배인 최대 1.2 메가톤(TNT 폭발력 100만t)의 파괴력을 낼 수 있다.

미국의 항공폭탄 중 가장 강력한 무기이지만, 지나치게 강한 위력과 광범위한 지역에 방사능 낙진을 떨어뜨리는 등 문제 때문에 오히려 효용이 떨어지는 '냉전기의 유물'로 여겨져 왔다.

미 국방부는 2019년 생산이 개시된 전술핵무기 B61-12(파괴력 0.3∼50킬로톤·1kt은 TNT 1천t 폭발력)가 배치되면 B83-1을 전량 퇴역시키려 했으나 트럼프 전 행정부가 막아서면서 무산된 바 있다.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 B-2

미국 공군의 전략폭격기 B-2

[EPA 연합뉴스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도입이 확정된 신형 전술핵무기인 W76-2(파괴력 5∼7킬로톤)는 계속 운용하기로 했다.

미국 민주당은 2020년 대선 당시 공약에서 W76-2를 '불필요하고, 낭비적이며, 옹호의 여지가 없는' 무기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후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퇴역이 검토됐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 전술핵무기의 위협이 부각되자 시기상조란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미국의 전술핵이 수백발에 불과한 반면, 러시아가 보유한 전술핵무기는 최다 2천발에 이르며 지금도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신무기를 다수 개발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역시 2030년까지 핵탄두 1천개를 보유할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미국은 사상 처음으로 주요 핵무기 보유국 두 곳을 전략적 경쟁자이자 잠재적 적국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미국과 동맹, 협력국에 대한 핵공격을 억지하는 것이 핵무기의 근본적 역할"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밖에 한정된 종류의 고위험·전략수준 공격'에 대응해서도 반격이 이뤄질 수 있다고 기술했다.

26일 러시아 플레세츠크에서 진행된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장면

26일 러시아 플레세츠크에서 진행된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장면

[EPA 연합뉴스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면서 "안보환경의 진화에 따라 억지력 확보능력을 보장하기 위해 핵전략 및 전력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수 있다"고 밝혀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 핵무기 보유고를 늘릴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미국 진보진영의 일부 인사와 반핵 단체들은 이날 공개된 NPR이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공멸 위험을 줄이는데 충분치 못한 내용이라며 날을 세웠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군축 및 비확산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존 울프스탈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세계는 위험한 장소이고 우리와 동맹국은 여전히 핵억지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서는 핵무기를 쓰는 것을 더 어렵고 가능성 낮은 일로 만들기 위해 미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반핵단체 글로벌 제로 소속 활동가 제시카 슬라이트는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언급과 달리 이 보고서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과잉핵전력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무기 개발을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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