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의 '911' 신고 제도는 시민의 신뢰를 잃었다.

장비는 노후화됐고 전화를 제때 받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경찰, 소방, 응급의료 기관 간 조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시 정부는 2004년 경찰 산하에 있던 911 신고 접수 기능을 통합통신사무국(Office of Unified Communications·이하 OUC)이라는 별도 정부 산하 독립 기관으로 떼내고 전문성 강화에 힘썼다.

연합뉴스는 3일 이태원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112 신고 대응과 관련한 시사점을 파악하고자 워싱턴DC 사우스이스트(SE) 지역의 마틴 루서 킹 주니어 애비뉴에 위치한 OUC 청사를 찾았다.

미국에는 6천개가 넘는 911 접수센터가 연간 2억4천만 건의 911 신고를 접수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워싱턴DC는 작년 120만여건을 접수했는데 이를 인구당 신고 건으로 환산하면 미국 내 어느 접수센터보다 많다고 한다.

기자는 이날 주간 근무를 책임지는 비앙카 베넷 상황반장(Warden Chief)의 안내를 받아 OUC 상황실을 둘러봤다.

상황실에는 신고 전화를 받는 접수직원(call-taker)과 접수직원이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경찰, 소방, 응급의료 등에 출동을 요청하는 출동요청직원(dispatcher)이 분주히 움직였다. 다만 신고 내용 입력과 출동 요청을 컴퓨터로 해서인지 예상과 달리 차분한 분위기였다.

직원 한 명이 접수와 출동요청을 함께하는 상황실도 있지만 OUC는 업무를 분리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주간 2개조, 야간 2개조로 나눠 4교대 방식으로 12시간씩 근무한다.

1개조 정원은 42명으로 이날은 휴가와 병가 등을 제외한 29명이 상황실을 지키고 있었다. 전자상황판에는 각 근무자의 현황을 '신고 응대', '교육', '부재' 등으로 표시해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미국 워싱턴DC의 911 신고 접수·처리를 담당하는 통합통신사무국(Office of Unified Communications)의 상황실. 2022.11.3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미국 워싱턴DC의 911 신고 접수·처리를 담당하는 통합통신사무국(Office of Unified Communications)의 상황실. 2022.11.3

 

전화를 받은 접수직원은 신고자의 위치를 가장 먼저 파악한 뒤 일련의 질문을 통해 대응에 필요한 정보를 추가로 확보해 '컴퓨터 이용 출동'(Computer Aided Dispatch) 시스템에 입력했다.

이 시스템은 사전에 설정한 사건 유형별 대응 계획에 따라 신고별로 처리 우선순위를 판단한다.

직원이 사고 유형과 피해 규모, 용의자 숫자, 무기 소지 여부 등 정보를 입력하면 CAD의 알고리즘이 대응 수준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통합통신사무국(Office of Unified Communications)을 총괄하는 수장인 카리마 홈스 국장은 CAD 알고리즘 설정을 경찰, 소방 등 관련 기관과 협의해 결정한다고 말했다.

홈스 국장은 "컴퓨터를 설정하기 전 경찰에게 '총기 강도가 진행 중이라는 신고를 받으면 우리가 어떤 등급을 부여하기를 원하는가?', '만약 흉기를 사용한 강도라면?', '어제 발생한 사건이라면?' 등을 물어본다"면서 "그러면 경찰이 우리가 어떤 등급을 부여할지, 어떤 사건에는 몇 명의 경찰에 출동 요청을 해주기를 원하는지 등 의견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장은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몰려 다치는 상황도 CAD에 입력이 돼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워싱턴DC에는 시위가 자주 일어나고 사람이 자주 모인다"며 "우리는 군중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미국 워싱턴DC의 911 신고 접수·처리를 담당하는 통합통신사무국(Office of Unified Communications)의 카리마 홈스 국장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DC OUC 청사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3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미국 워싱턴DC의 911 신고 접수·처리를 담당하는 통합통신사무국(Office of Unified Communications)의 카리마 홈스 국장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DC OUC 청사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3

 

한국 경찰과 마찬가지로 가장 긴급한 대응을 필요로 하는 우선순위 1, 2등급은 경찰이 무조건 현장에 나가야 한다.

베넷 상황반장은 "신고자가 제공한 정보가 대응 수준을 결정한다"며 "용의자가 현장에 있거나 총기를 소지한 경우, 출혈이 발생한 사고 또는 아동이 포함된 경우 등에는 무조건 출동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소방도 차량에 장착된 기기로 신고 내용과 출동 명령을 바로 볼 수 있고 때로는 먼저 알아서 출동하기도 한다.

OUC 직원들은 실시간으로 경찰과 소통하며 출동 여부와 현장 대응 조치 등을 파악하고 필요하면 인력 증원을 요청한다.

이들은 출동이 필요한 지역 특징을 숙지하기 위해 교육 기간 경찰과 함께 순찰차를 타고 돌며 도로명과 동네를 익히는 교육을 받기도 한다.

OUC 직원들은 911 신고를 제대로 처리하려면 관계 기관과 소통, 상호운용성 강화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위해 상황실에는 경찰, 소방, 응급의료 기관의 연락관이 원활한 업무 조율을 위해 상주하고 있었으며 상황실 2층에는 워싱턴DC의 연방재난관리청(FEMA) 격인 '국토안보 및 재난관리국'(HSEMA) 직원들이 대형 사건·사고에 대비해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주에 있는 70개 911 접수센터와도 상호 지원 협약을 체결했으며, 인근 접수센터와 CAD를 연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워싱턴DC는 포토맥강을 사이에 두고 버지니아주 알링턴시를 마주하는 데 두 도시를 연결하는 교량이나 고속도로 등 특정 주소와 관련해 들어오는 신고는 어느 도시에서 접수하든 함께 볼 수 있으며 출동도 함께한다.

OUC는 911 접수 기능을 경찰에서 분리한 게 신고 대응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베넷 상황반장은 "민간인이 콜센터를 운영하면 그만큼 경찰의 업무 부담이 줄어 더 많은 현장에 출동할 여력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의 911 신고 처리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OUC만 해도 지난 8월 자동차에 3개월 된 유아를 두고 내린 사건 신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직원이 실수로 출동 요청을 취소해 유아가 사망했다. 7월에는 소방관과 의료진을 잘못된 주소로 보내는 바람에 심장마비가 일어난 유아에 대한 대응이 늦어졌기도 했다.

이후 OUC는 아직 출동이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출동을 취소하려고 하는 경우 컴퓨터가 '긴급 대응이 필요한 신고인데 정말 종결하겠느냐'는 메시지를 띄우도록 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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