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서방이 취했던 강력한 대러 제재가 느슨해지는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이 제재 고삐 조이기에 나섰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보도했다.

미국은 금융과 무역 부문에서 나타나는 제재 이완이 전쟁 종식을 위한 대러 압박 노력을 약화시켜 전쟁을 길어지게 할 수 있다고 보고 주요 동맹국들을 상대로 철저한 제재 준수를 주문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서방이 도입한 대러 금융·무역 제재 준수를 촉구하기 위해 고위 정부 관리들을 동맹국들로 잇따라 파견하고 있다.

미 관리들의 임무는 제재 회피 네트워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제재에서 이탈하려는 국가와 기업들에 징계 조치를 시사하며 조용히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파트너들에 철저한 대러 제재 준수를 요청했다.

앞서 이달 초엔 월리 아데예모 미 재무부 부장관이 같은 임무로 벨기에·영국·프랑스를 방문했고, 최근엔 미 재무부의 테러금융·금융범죄 담당 차관보인 엘리자베스 로젠버그가 일본을 찾았다.

로젠버그 차관보는 지난달 말 아랍은행연합 회의에도 참석해 "아랍권에서 러시아의 자금세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며 이례적으로 날카로운 어조로 경고했다.

미국의 제재 고삐 조이기는 서방권의 대러 제재 압박 노선에서 '구멍'이 생기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2월 말 부과된 서방의 대러 제재 여파로 올 2분기까지 주요 경제국의 대러 수출은 50% 이상 급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급감했던 대러 수출은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을 포함한 상당수 국가에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WSJ는 자체 무역통계 분석을 근거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대러 수출이 여전히 제재 이전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초기 손실의 거의 3분의 1을 회복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도 대러 제재를 계속 확대하곤 있지만 당초 무역 감소분의 일부를 되찾은 것으로 파악됐다.

EU 제재에 동참한 오스트리아, 체코, 스위스의 은행들은 제재 이행에서 다소 완화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스위스 금융당국은 지난 4월 약 80억 달러의 러시아 자산을 동결했다고 밝혔으나, 5월에는 이들 자산 중 약 30억 달러를 풀었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 라이파이젠 은행은 지난 3월 주요 영업국인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 같은 결정은 지금까지 미뤄지고 있다.

'자금세탁방지 전문가 협회'의 러시아 제재 조사관인 조지 볼로신은 "대부분의 기업과 은행들이 제재 위반 가능성이 있는 거래를 피하고 있지만, 일부는 제재 상황을 기회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일부 국가들은 러시아의 전쟁 수행과 경제 회복에 핵심적인 자금과 물자를 제공하는 '생명줄' 역할을 키워가고 있다. 서방의 대러 제재를 지지하지 않았던 중국의 대러 수출은 전쟁 이전보다 더 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오고 있는 나토 회원국 튀르키예의 대러 수출도 2분기 말 전쟁 전보다 약 25% 증가했고, 이후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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