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상징적 장소내 친필 새겨진 비석 앞에서…與인사들 일부 불참
김총리 "현대사 지울수 없는 과오"…노재봉은 "軍 통치기능 참여 숙명" 논란도
엇갈린 공과 속 행사장 밖 '광주학살 주범, 국가장 반대' 피켓시위 vs 추모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김치연 홍준석 기자 = 3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엄수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거행됐다.
이날 영결식은 예정된 시간을 20분 넘겨 80분간 진행됐다.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지낸 고인과 인연이 깊은 상징적인 무대에서 유족과 측근들이 고인과 '영결'(永訣)을 한 셈이었다.
이날 오전 9시 빈소인 서울대병원을 출발한 운구차는 노 전 대통령이 별세 직전까지 머물렀던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으로 향해 노제를 지낸 뒤 오전 11시께 영결식장인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 도착했다.
'인류에 평화를, 민족에 영광을. 대통령 노태우'라고 새겨진 비석이 놓인 곳이다.
정식으로 참석한 인사는 국무총리 등 국가 주요 인사, 정당·종단 대표 등 정부 측 초청 인사, 유족 측 인사 등 50명 미만의 조촐한 규모다.
검소하게 장례를 치러달라는 고인 뜻과 코로나19 방역 상황 등을 고려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공과 평가가 엇갈리며 '국가장' 예우가 적절한지 사회적 논란을 빚은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장례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 장례집행위원장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해 부인 김옥숙 여사, 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아들 노재헌 변호사 등 유족과 친지들, 6공화국 주요 인사들로 구성된 장례위원회 유족 측 위원, 주한 외교단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등 여권 인사들은 영결식에 불참했다. 장례위원회 고문인 박병석 국회의장도 세종시 국회의사당 부지 방문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건강상 이유로 발인에 참석하지 못했던 여사는 영결식에는 휠체어를 타고 나와 좌석 맨 앞줄에 자리했다. 김 여사 오른편으로는 소영·재헌 씨 등 유족이 앉았다.
박 의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송 대표 등의 불참으로 김 여사 왼편 두 자리와 김 총리 뒤쪽 등 빈자리들이 눈에 띄었다.
초청받은 정당 대표 중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만 유일하게 참석했다. 청와대에서는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이 참석했다.
뒷줄에는 '6공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전 정무 제1장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노태우정부 당시 핵심 인사들이 자리했다.
장례위원장인 김부겸 총리는 조사를 통해 88올림픽 성공적 개최, 북방외교 등 노 전 대통령의 공적을 언급하면서도 "우리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무총리로 고인과 함께했던 노재봉 전 총리가 시작부터 눈시울을 붉히며 추도사를 했다.
노 전 총리는 고인을 '각하'라 부른 뒤 영결식 장소로 이곳이 정해진 배경과 관련해 "'서울올림픽을 허락하지 않으려거든 이 국제올림픽위원회 사무실을 내 무덤으로 만들어달라'던 절규에 기어이 (올림픽이) 열리게 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평화의광장에서 각하를 마지막으로 모시겠다는 우리 심정을 헤아리소서"라고 흐느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정규육사 1기생들에 대해 "국민의 문맹률이 거의 80%에 해당하던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현대 문명을 경험하고 한국에 접목시킨 엘리트들이었다"며 "이들에게 한국 정치는 국방의식이 전혀 없는 난장판으로 인식됐다. 이것이 그들(육사 1기생)로 하여금 통치기능에 참여하는 계기였다. 이는 이 1기생 장교들의 숙명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는지도 모르겠다"며 12·12 군사쿠데타 및 군사독재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분향·헌화 때 김 여사는 눈물을 쏟아냈다. 88서울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 등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영결식 마지막에는 조총(弔銃) 21발으로 마지막 예우를 갖췄다. 영결식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앞세운 운구행렬이 식장을 빠져나가면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