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임원들이 내부자 거래 혐의를 받지 않고 소속 회사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 오히려 내부자 거래에 악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상장사 임원들이 자사 주식을 합법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절차 규정('10b5-1 플랜')에 따라 2016∼2021년 행해진 7만5천건의 내부자 주식 매각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상장사 임원들이 이 제도를 악용해 부당이득을 얻은 것으로 의심할 수 있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주가 하락을 불러올 미공개 정보를 가진 상장사 임원들이 사전 주식매각 계획을 세운 뒤 단기간에 보유 주식을 팔아 상당한 이익을 챙긴 것으로 의심 가능한 사례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연료전지 개발업체인 플러그 파워의 최고경영자(CEO)인 앤드루 마시는 자사 주가가 15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한 지난해 1월 사전 주식매각 계획에 따른 자동 거래로 보유주식의 40%를 매각해 3천600만달러(약 469억원)를 챙겼다.

그러나 마시 CEO의 사전 주식매각 계획은 불과 한 달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그의 주식 매도 이후 악재가 잇따르면서 회사의 주가는 불과 3개월 사이에 60%나 급락했다.

WSJ은 마시 CEO의 경우처럼 상장사 임원들이 사전 주식매각 계획을 세운 뒤 60일 이내에 주식을 매각하는 사례가 조사대상의 약 5분의 1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60일 이내 매각했을 때의 이익이 3개월 뒤에 매각했을 때보다 5억달러(약 6천507억원)나 더 많았다.

이에 비해 120일 이후 매각한 경우 팔고 나서 주가가 오른 경우와 내린 경우가 거의 반반이어서 특별한 이익을 얻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조사한 사례의 약 5%가 사전 주식매각 계획 수립 후 30일 이내에 주식을 매각했으며, 계획 수립 후 14일 안에 주식을 매각한 경우도 1천285건이나 됐다.

WSJ은 기업들이 임원들의 사전 주식매각 계획 수립 시 일정 기간 매각 금지 규정을 두고 있으나, 그 기간을 임의로 정할 수 있고 추후 기간 변경도 가능하다면서 이를 이용해 계획 수립 당일 주식 매각에 나선 기업 임원들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행 규정은 임원들이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자사 주식을 거래하지 못하게 매도 시점과 물량을 사전 계획서에 적도록 하고 있으나, 매도 당일 계획서를 작성하거나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추후 계획을 수정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장기업 임원들이 이 규칙에 맞춰 자사 주식을 팔더라도 시장 일각에서는 내부자 거래 의혹이 제기되곤 했다.

스탠퍼드대학의 앨런 재골린저 교수는 2009년 연구 결과 사전 주식매각 계획에 따라 매각한 주식의 평균 수익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많았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스탠퍼드대학과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경영대학원, 워싱턴대학의 공동 연구 결과 사전 주식매각 계획 수립 후 단기간에 주식을 매각한 경우 매도자는 손실을 입지 않고 해당 회사 주가는 매각 이후 떨어진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상장사 임원은 계획에 따라 주식 매각에 나설 경우 SEC의 양식에 따라 사전보고를 하게 되어 있으나, 이를 일반 투자자들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라고 WSJ은 지적했다.

미시간대학의 네저트 세이훈 교수는 내부자가 사전 주식매각 계획을 수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기 전에 주식을 내다 파는 경우는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거래로 볼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와튼 경영대학원의 브래드퍼드 린치 레비 교수도 당국이 사전 주식매각 계획을 이용한 상장사 임원의 주식 매각이 내부자 거래로 조사를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면서 사전 주식매각 계획을 통한 주식 매도는 상장사 임원들에게 '면죄부' 같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SEC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해 12월 '10b5-1 플랜' 개선안을 공개한 상태다.

개선안의 주요 내용은 계획 수립 후 120일간 주식매도 금지, 내부자의 회사 주식 거래 후 2일 내 사전 주식매각 계획 수립일 공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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