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 이뤄진 전직 대통령 자택에 대한 연방수사국(FBI)의 압수수색을 둘러싸고 조 바이든 행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간 갈등이 정면대결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출마를 막으려는 정치수사'라고 반발하자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11일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상당한 근거가 있다"며 이를 부인하고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공개를 요구하는 초강수를 두면서다.

FBI의 이번 압수수색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제기된 기밀문서 불법 반출 혐의와 관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압수수색 영장공개 요청은 아주 이례적인 조치로, 영장이 공개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반출한 구체적인 기밀문건 등이 적시돼 있을 것으로 보여 큰 파장이 예상된다.

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바이든 행정부나 트럼프 전 대통령 양쪽 중 어느 한 쪽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돼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대통령의 재임 시절 기록물을 국가기록원에서 엄격하게 보존·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미 하원의 1·6 의회 난입특위의 조사 과정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밀문서를 포함해 재임 시절 상당수 기록물을 플로리다 마러라고 사저로 빼돌려진 사실이 드러나 올해 초부터 논란이 됐다.

반출된 문서 가운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주고받은 이른바 '러브레터' 친서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15박스에 달하는 기록물을 국립문서보관소에 반환했다.

하지만 아직 반환하지 않은 기밀문서가 더 있다는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돼왔고, FBI는 이에 대한 수사를 계속 진행해오다가 지난 8일 전례없는 전직 대통령 자택 압수수색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보수진영에선 이에 대해 '검찰의 직권 남용'으로 "사법체계를 무기로 삼았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이들은 과거에도 주요공직자의 기밀문서 유출 논란이 있었지만 형사처벌을 염두에 둔 강제수사보다는 협상을 통해 원만하게 해결해온 사실을 내세워 FBI의 조치가 '표적수사'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 출신으로 국무장관 재임 시절 기밀내용을 개인 이메일로 받아 논란이 됐으나 원만히 마무리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케이스를 언급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 수사의 편파성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에 갈런드 장관은 회견에서 FBI가 압수수색에 나선 데 대해 "상당한 근거가 있다"며 정치수사, 편파수사라는 주장을 맞받아쳤다.

그는 자신이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직접 승인했고 무엇보다 연방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사실을 강조하며 수사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또 법무부는 어떤 두려움이나 호의 없이 법을 공정하고 집행하고 있다며 압수수색에 대한 비판은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갈런드 장관의 회견 직후 "자신의 변호인과 대리인들이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었다"며 압수수색의 부당성을 부각시켰다.

보수진영에선 FBI가 소환장 발부 절차도 없이 곧바로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잘못됐다며 절차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봄 법무부로부터 반환하지 않은 기밀문서들을 제출하라는 소환장을 받았으나 진전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연방수사국(FBI)의 지난 8일 압수수색이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NYT는 "정치적 폭발력이 큰 압수수색에 들어가기 앞서 법무부가 여러 노력을 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마러라고 자택에 남아있는 문서들이 매우 민감하고 국가안보와 연관된 것이어서 불가피하게 압수수색을 결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마러라고 사저에 추가적인 기밀문서가 존재한다는 제보가 있어 수색을 단행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FP 연합뉴스 자료 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갈런드 법무장관이 이날 회견에서 연방법원에 압수수색영장 공개를 요청함에 따라 영장 공개 여부가 이번 사태의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CNN은 법무부가 연방법원으로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측과 오는 12일 오후 3시까지 영장 공개에 동의하는지 협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르면 12일 오후에 영장 공개 여부가 결론날 수 있다는 얘기다.

AP통신은 그러나 영장 공개 요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질지, 또 그럴 경우 언제 공개될지는 아직 안갯속이라고 전했다.

영장 공개 여부와 별개로 FBI의 수사와 압수수색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반발도 향후 상황 전개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꼽힌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무장 폭력 선동은 물론 법무장관 등을 대상으로 살해협박까지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제2의 의회 폭동'과 같은 사태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 이날 FBI 신시내티 지부에선 한 남성이 이 건물에 침입하려고 하다가 실패하자 도주하던 중 추격하던 경찰과 총격전까지 벌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괴한의 동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FBI는 압수수색 직후 소속 요원들과 법무부 직원들에게 위협 가능성을 경고했다.

갈런드 법무장관도 이날 회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법무부와 FBI에 대한 협박과 공격을 비난하면서 "부당한 공격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강력 대응을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일단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백악관은 갈런드 장관의 긴급 기자회견에 대해 사전에 공지 받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여름 휴가에 들어간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잇단 트윗을 통해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이 배럴당 4달러 밑으로 떨어진 사실을 축하하며, 신재생 에너지 필요성만을 언급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법률대리인인 법무장관이 직접 긴급 회견을 자청해 반박에 나서며 정면돌파를 선언함에 따라 이번 사태는 전·현직 정권간 정면충돌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해보인다.

특히 이미 공화당내에서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위치를 공고히 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일을 계기로 대선 출마 선언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는 등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토대로 대응해 나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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