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중국의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 때문에 중국 본토 반도체 업체에서 일했던 대만 인력들이 이탈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6일 보도했다.

중국은 지난 몇 년간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대만의 반도체 박사학위 소지자 등 기술자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했다.

대만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대만 반도체 기술자 3천 명이 중국에서 일했는데, 이는 중국 내 반도체 기술자 총 4만 명 중 7.5%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들 대만 기술자 중에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 등에서 고위 임원으로 근무한 핵심 인사들도 있다.

TSMC에서 17년간 일했다가 삼성전자를 거쳐 2017년부터 SMIC의 공동 CEO를 맡고 있는 량멍쑹(梁孟松)이 대표적인 예로, 그는 SMIC의 7나노미터(㎚, 10억분의 1m) 공정 생산 성공을 이끌었다.

대만 반도체 기술자들에게도 더 많은 임금을 주고 새로운 기술을 탐험할 수 있는 중국 반도체 기업의 고용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2018년에 중국 동북부로 이직한 대만인 케빈 리씨 역시 그중 한 명이었는데 그는 "중국으로 이주한 몇 명은 기밀을 돈과 맞바꿨다"며 "다른 사람들은 대만 기업의 높은 근무 강도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의 엄격한 방역뿐 아니라 대만에 대한 강경 정책 등 지정학적 요인까지 더해지면서 대만 기술자들이 중국행을 택할 이유가 급속히 사라졌다.

대만 정부도 자국 내 반도체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이직하면서 기술 정보를 빼갈까 우려해 중국행을 자제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필수적 핵심 자산이 된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첨단 반도체의 세계 최대 생산국인 대만은 자신들이 '21세기판 군비 경쟁'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NYT는 분석했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미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계속 지원하지만, 정교한 무기에 필요한 반도체의 대만 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중국 반도체 기업에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는 등의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도 이 규제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됐다고 NYT는 진단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TSMC에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압박했다.

반대로 중국 정부는 미국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미국은 과학기술 패권을 수호할 필요에 따라 수출 관리·통제 조치를 남용하고 중국 기업을 악의적으로 봉쇄하고 탄압했다"고 비난했으며 TSMC에 징벌적 보복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TSMC는 중국 난징과 상하이에 공장을 두고 있다.

일단 TSMC는 미국의 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와 관련해 1년의 유예 기간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미국 정부가 미국 시민권자가 중국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갖고 중국에서 일하는 중국인·대만인 근로자 약 200명이 중국 직장이나 미국 시민권 중 하나를 포기하게 됐다.

골드만삭스 파트너 출신인 대만의 린샤루 이코노미스트는 대만 반도체 기술자들이 중국 기업에 취업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했다며 "곧 그 일은 냉전시대에 소련으로 가는 것과 같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만 정부도 중국으로의 인재 유출을 막고 핵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2021년 초에는 대만 헤드헌터들이 중국 반도체 기업을 위해 인재 스카우트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했으며, 대만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을 단속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대만에서 사업하는 중국 기업들은 대만 반도체 기술자들을 낚아채 가는 선봉장이라는 의심을 받았으며, 대만 정부는 지난해부터 올해 9월까지 기술자들과 기밀을 빼간 혐의로 총 40건을 기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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